동오 70년
1. 대한민국 농업발전의 씨앗을 심다 / 1955~1977년
01국내 대표 농산업전문기업의 태동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삼천리 강산과 기간산업이 피폐화된 1955년, 이장표 동오그룹 선대회장은 ‘전 국민의 풍요로운 식생활과 농업을 통한 국가 발전’을 위해 ㈜조비를 설립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당시 시대에 무엇보다도 식량생산을 통한 국민의 먹거리 해결이 시급한 과제였고, 국가존립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농업이었기에 농업을 통한 국가발전을 소명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어 1957년에는 안전한 농산물의 대량생산을 위해 ㈜경농을 설립했으며, 농업에 가장 필수적인 비료와 작물보호제를 공급하며 안정적인 식량생산과 국가 식량자급
률 향상에 기여해 왔습니다.

02국내 최초 입제공장 준공(1964년)

경북농약공사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 지속성장기업의 기반을 갖추고 본격 발전의 시동을 걸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정부는 중농정책을 표방하고 식량 증산과 농산물 가격 안정에 역점을 뒀고, 경북농약공사 역시 이에 발맞춰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공급 물량이 증가하면서 기존 수창동 공장의 확장이 필요해지자, 경북농약공사는 1964년 4월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새로운 공장을 준공해 이전했다. 침산동 공장은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입제공장으로, 원제 가공 및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경농은 ‘상감마 입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입제 형태의 작물보호제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서 경북농약공사가 국내 최초로 공장을 만든 것이다. 이는 원시적 수준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농약제조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03사명 변경에 이어 서울에 둥지를 틀기까지(1968년)

동오그룹 역사에서 1960년대 중후반은 한국 농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선도기업으로서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었다. 경북농약공사는 경북농약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한 데 이어 설립 11년 후인 1968년 4월, 본사를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65-1번지로 이전하면서 대한민국 중심 한복판에 입성했다. 이는 당시 기업의 무서운 상승세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자 창업 10년을 전후해 더 큰 성장의 토대를 만들고자 한 경영적 판단이었다. 이후 경북농약공업은 일본의 니찌맨실업과 구미아이화학에서 키타진 원제를 수입해 판매하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증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였으며, 제품원료 제조공장과 창고를 증축하고 대규모 분제시설을 신축하는 등 인프라를 확장했다. 이후 미국 롬앤하스사와 합작해 한미유기화학㈜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수도용 제초제의 원제합성에 성공했으며(1972년),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주식을 상장함으로써(1977년)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04투명경영 개시, 기업공개와 상장(1977년)

1976년, 병환으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선대회장에 이어 제2대 김덕엽 대표가 취임했다. 김 대표는 취임후 경북농약공업의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매출이 꾸준히 신장했고 사세가 확대됐다. 국내 식량증산 및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농수산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2. 일등 기업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다 / 1978~2013년
01연구기업 출사표, 중앙연구소 설립(1987년)

1987년 9월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중앙연구소가 개소했다. 4,300㎡ 이상의 광활한 대지에 연구동과 제제공정동, 독성연구동, 유리온실 등이 자리한 중앙연구소는 설립 이후 현재까지 신물질·신농약 개발과 친환경농업 및 유기농자재 개발에 전력을 다하며, 우수한 경농 제품을 탄생시키는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02사세 확장, 성서공단 제대공장 및 대구공장 신축(1997년)

앞선 1982년 사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한 경농은 1992년 이병만 대표 체제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뒤 업계 선두와 글로벌기업으로 진입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수한 품질과 안정적인 생산을 확보하기 위해 자동화된 첨단 생산시설이 필요했다.
기존의 침산동 공장은 1960년대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는 생산물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성서1공단에 농약 포장용기를 생산할 수 있는 제대공장을 설립했고 대구 월암동에 위치한 성서 제2공단에 신축공장을 추가로 준공했다. 1997년 가동에 들어간 신공장은 기존 침산동 공장보다 규모가 월등히 컸으며, 기계와 설비는 물론 중앙컴퓨터 제어시스템으로 전 공정을 컨트롤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췄다. 이후에도 증축을 통해 규모를 키우며 경농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기업에 걸맞은 위상과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03‘던져넣는 제초제’ 개발 성공, 영농의 패러다임을 바꾸다(2004년)

경농은 2004년 투척형 제초제 시제품인 ‘주먹탄 점보제’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1990년대, 국내 농업계에서 발포성 정제 농약 개발이 화두로 떠올랐다. 농업 인구의 고령화와 농약 살포에 대한 기피현상이 만연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던지는 농약’이 떠올랐던 것이다. 주먹탄 점보제는 논에 들어가지 않고 논둑에서 300평당 25~50g 수준의 대형 정제를 20~40개 일정 간격으로 던져 넣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인다고 평가받는다.

04인재양성의 맹아, 조비경농장학재단 설립(2004년)

2004년,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경농과 조비가 함께 하는 ‘조비경농장학재단’이 설립됐다. 그간 배출된 재단의 장학생들은 현재 경농을 비롯한 농업계 및 다양한 산업계에서 우수 인재로 활동하고 있다.

05나눔경영 선포, 사회적 기업으로(2009년)

2009년 7월 12일, 경농은 창립 52주년 기념행사를 겸해 ‘First! 2015 비전 선포와 나눔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선포식의 슬로건은 ‘나눔으로 함께하는 행복한 푸른 세상’이었다. 경농은 지속가능한 농업과 밝고 따뜻한 미래농촌 건설을 위해 농업인재 양성과 지식·기술·일손 나눔활동을 폭넓게 전개하고 있다. 전국 사업장별로 다양한 봉사활동과 ‘1사 1촌 자매결연’,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조비경농장학재단’ 등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1사 1촌을 맺은 마을에 일손돕기는 물론 영농컨설팅, 병해충방제 세미나, 신제품 공동시험 등을 하는 등 실질적인 자매결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3. 고객을 위한 미래를 그리다 / 2014년~
01김제(2014년)·나주(2016년) 미래농업센터 개관

2014년 개관한 김제미래농업센터는 농업인과 농업의 미래를 위해 경농이 특별 기획한 공간이다. 농민들에게 농업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문화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2016년에는 나주에 미래농업센터를 열었다.
미래농업센터는 농업인들에게 학습장, 회의실 등을 무료로 개방해 최신의 농업정보와 제품의 기술력을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센터 내 첨단 유리온실과 시범포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과 연구인력도 제공한다. 또한 농업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영농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종자·관수·천적곤충 등 분야별 농업솔루션을 융복합해 ‘원스톱 농업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02동오농촌재단 설립(2018년)

동오그룹은 ‘농업기술의 선진화와 새로운 농촌문화 창달’을 기치로 내걸고 동오농촌재단을 설립했다. 동오농촌재단은 이장표 선대회장과 이병만 이사장의 농업사랑 정신에 따라 ‘한국농업 기술의 선진화’와 ‘농촌문화의 부흥’에 기여하고자 한다.

1. 대한민국 농업발전의 씨앗을 심다 / 1955~1977년
국내 대표 농산업 기업이 태동하다(1957년)

1957년 7월 12일, 대구시 수창동 50-17번지. 작고 허름한 건물에 간판이 하나 걸렸다. ‘경북농약공사’. 훗날 대한민국 농약업계는 물론 농산업 분야를 선도하며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동오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경농은 그렇게 출발했다.
앞서 경북농약공사 설립 2년 전인 1955년 11월, 이장표 동오그룹 선대회장은 부산시 영도에 현재 조비의 전신인 ‘조선비료공업주식회사’를 세웠다. 경북농약공사 설립과 함께 대한민국은 농산업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농약과 비료 회사를 모두 갖춘 전문기업 동오그룹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국내 최초 입제공장 준공(1964년)

경북농약공사는 1960년대 들어서면서 지속성장기업의 기반을 갖추고 본격 발전의 시동을 걸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정부는 중농정책을 표방하고 식량 증산과 농산물 가격 안정에 역점을 뒀고, 경북농약공사 역시 이에 발맞춰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공급 물량이 증가하면서 기존 수창동 공장의 확장이 필요해지자, 경북농약공사는 1964년 4월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새로운 공장을 준공해 이전했다. 침산동 공장은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입제공장으로, 원제 가공 및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경농은 ‘상감마 입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입제 형태의 작물보호제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서 경북농약공사가 국내 최초로 공장을 만든 것이다. 이는 원시적 수준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농약제조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사명 변경에 이어 서울에 둥지를 틀기까지(1968년)

동오그룹 역사에서 1960년대 중후반은 한국 농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선도기업으로서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었다. 경북농약공사는 경북농약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한 데 이어 설립 11년 후인 1968년 4월, 본사를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65-1번지로 이전하면서 대한민국 중심 한복판에 입성했다. 이는 당시 기업의 무서운 상승세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자 창업 10년을 전후해 더 큰 성장의 토대를 만들고자 한 경영적 판단이었다. 이후 경북농약공업은 일본의 니찌맨실업과 구미아이화학에서 키타진 원제를 수입해 판매하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증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였으며, 제품원료 제조공장과 창고를 증축하고 대규모 분제시설을 신축하는 등 인프라를 확장했다. 이후 미국 롬앤하스사와 합작해 한미유기화학㈜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수도용 제초제의 원제합성에 성공했으며(1972년),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주식을 상장함으로써(1977년)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투명경영 개시, 기업공개와 상장(1977년)

1976년, 병환으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선대회장에 이어 제2대 김덕엽 대표가 취임했다. 김 대표는 취임후 경북농약공업의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매출이 꾸준히 신장했고 사세가 확대됐다. 국내 식량증산 및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농수산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2. 일등 기업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다 / 1978~2013년
연구기업 출사표, 중앙연구소 설립(1987년)

1987년 9월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중앙연구소가 개소했다. 4,300㎡ 이상의 광활한 대지에 연구동과 제제공정동, 독성연구동, 유리온실 등이 자리한 중앙연구소는 설립 이후 현재까지 신물질·신농약 개발과 친환경농업 및 유기농자재 개발에 전력을 다하며, 우수한 경농 제품을 탄생시키는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세 확장, 성서공단 제대공장 및 대구공장 신축(1997년)

앞선 1982년 사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한 경농은 1992년 이병만 대표 체제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뒤 업계 선두와 글로벌기업으로 진입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수한 품질과 안정적인 생산을 확보하기 위해 자동화된 첨단 생산시설이 필요했다.
기존의 침산동 공장은 1960년대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는 생산물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성서1공단에 농약 포장용기를 생산할 수 있는 제대공장을 설립했고 대구 월암동에 위치한 성서 제2공단에 신축공장을 추가로 준공했다. 1997년 가동에 들어간 신공장은 기존 침산동 공장보다 규모가 월등히 컸으며, 기계와 설비는 물론 중앙컴퓨터 제어시스템으로 전 공정을 컨트롤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췄다. 이후에도 증축을 통해 규모를 키우며 경농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기업에 걸맞은 위상과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던져넣는 제초제’ 개발 성공, 영농의 패러다임을 바꾸다(2004년)

경농은 2004년 투척형 제초제 시제품인 ‘주먹탄 점보제’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 1990년대, 국내 농업계에서 발포성 정제 농약 개발이 화두로 떠올랐다. 농업 인구의 고령화와 농약 살포에 대한 기피현상이 만연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던지는 농약’이 떠올랐던 것이다. 주먹탄 점보제는 논에 들어가지 않고 논둑에서 300평당 25~50g 수준의 대형 정제를 20~40개 일정 간격으로 던져 넣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인다고 평가받는다.

인재양성의 맹아, 조비경농장학재단 설립(2004년)

2004년,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경농과 조비가 함께 하는 ‘조비경농장학재단’이 설립됐다. 그간 배출된 재단의 장학생들은 현재 경농을 비롯한 농업계 및 다양한 산업계에서 우수 인재로 활동하고 있다.

나눔경영 선포, 사회적 기업으로(2009년)

2009년 7월 12일, 경농은 창립 52주년 기념행사를 겸해 ‘First! 2015 비전 선포와 나눔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선포식의 슬로건은 ‘나눔으로 함께하는 행복한 푸른 세상’이었다. 경농은 지속가능한 농업과 밝고 따뜻한 미래농촌 건설을 위해 농업인재 양성과 지식·기술·일손 나눔활동을 폭넓게 전개하고 있다. 전국 사업장별로 다양한 봉사활동과 ‘1사 1촌 자매결연’,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조비경농장학재단’ 등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1사 1촌을 맺은 마을에 일손돕기는 물론 영농컨설팅, 병해충방제 세미나, 신제품 공동시험 등을 하는 등 실질적인 자매결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3. 고객을 위한 미래를 그리다 / 2014년~
김제(2014년)·나주(2016년) 미래농업센터 개관

2014년 개관한 김제미래농업센터는 농업인과 농업의 미래를 위해 경농이 특별 기획한 공간이다. 농민들에게 농업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문화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2016년에는 나주에 미래농업센터를 열었다.
미래농업센터는 농업인들에게 학습장, 회의실 등을 무료로 개방해 최신의 농업정보와 제품의 기술력을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센터 내 첨단 유리온실과 시범포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과 연구인력도 제공한다. 또한 농업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영농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종자·관수·천적곤충 등 분야별 농업솔루션을 융복합해 ‘원스톱 농업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동오농촌재단 설립(2018년)

동오그룹은 ‘농업기술의 선진화와 새로운 농촌문화 창달’을 기치로 내걸고 동오농촌재단을 설립했다. 동오농촌재단은 이장표 선대회장과 이병만 이사장의 농업사랑 정신에 따라 ‘한국농업 기술의 선진화’와 ‘농촌문화의 부흥’에 기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