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오 이장표 회장은 1919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농업 속에서 생활하며 일찍이 농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식량 자급자족이 국가발전의 최우선 과제임을 느끼고 농업 발전을 통한 국가경제 부흥에 기여하고자 1955년 ㈜조비, 1957년 ㈜경농을 설립하였습니다.
비료를 공급하는 ㈜조비와 농약을 공급하는 ㈜경농은 당시 토양 영양적으로 척박하던 우리 땅에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운 영양분을 공급하며 수확량 증산 및 식량 자급자족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1970년대 녹색 혁명을 주도하였습니다. 노동력에 의존하던 당시 농업에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최신 영농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 농업의 과학화·현대화를 선도하였습니다.

동오 이장표 회장은 ㈜조비와 ㈜경농을 운영하며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 확보를 강조하였습니다. 기업설립의 목적이 국가경제의 부흥에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해야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조비는 정부주도의 기업들이 아직 준공되기 전인 1955년 설립되어 국내외적으로 앞선 기술력과 제조설비를 인정받았습니다. 1957년 설립된 ㈜경농도 1958년 ‘농약제조업 및 수입업 허가 제1호’를 취득한 이래 1964년 국내최초 입제공장 준공, 1972년 국내최초 수도용제초제 원제합성 성공, 1973년 국내최초 제초제 원제공장 준공, 1976년 국내최초 국산 논제초제 개발 등 한국농산업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 왔습니다.

농촌에서 출생하여 농업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동오 이장표 회장은 농업인이 잘사는 농업 강국을 꿈꾸었습니다. 농업인의 풍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비료와 농약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조비와 ㈜경농의 우수한 제품들은 건강한 농산물의 다수확을 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 향상과 농가소득 향상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국가 경제의 중장기 방향이 대외 수출로 전환하던 1968년에는 ㈜삼흥제사를 설립하여 국가 수출목표 달성과 농가소득 향상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삼흥제사가 국내 양잠 사업의 중흥을 선도하던 1970년대 양잠 산업의 수출액은 국가 총 수출액의 9%, 농산물 총 수출액의 52%를 담당하였습니다.

동오 이장표 회장은 이웃과 더불어 따뜻함을 함께 나누는 인본주의 경영을 추구하였습니다. 창업기인 1960년대부터 불우이웃돕기, 자연재해피해 지원, 방위성금 후원 등에 앞장섰으며 임직원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였습니다.
특히, 교육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경북 경주지역에 교육시설의 건립을 기증하기도 했으며, 학업 대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임직원들에게 인근지역의 야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장표 회장의 이러한 고귀한 인본주의 정신은 현재 조비경농장학재단, 동오농촌재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험난했던 시절을 겪으며 국가경제 부흥에서 그 해결책을 찾은 경영인 동오 이장표 회장. 이장표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농업 1세대의 발전을 주도하며 오늘날 한국농업의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 왔습니다. 더불어 소외된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로 인본주의를 실천하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왔습니다.
‘동오(東塢)’라는 호가 의미하듯 한국농업과 농업인이 기댈 수 있는 동녘의 큰 언덕으로서, 조화와 상생의 가치를 추구했던 참 경영인이었던 동오 이장표 회장. 이장표 회장의 대의적 이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농산업을 있게 한 요체였습니다.

동오 이장표 회장은 1919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농업 속에서 생활하며 일찍이 농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식량 자급자족이 국가발전의 최우선 과제임을 느끼고 농업 발전을 통한 국가경제 부흥에 기여하고자 1955년 ㈜조비, 1957년 ㈜경농을 설립하였습니다.
비료를 공급하는 ㈜조비와 농약을 공급하는 ㈜경농은 당시 토양 영양적으로 척박하던 우리 땅에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운 영양분을 공급하며 수확량 증산 및 식량 자급자족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1970년대 녹색 혁명을 주도하였습니다. 노동력에 의존하던 당시 농업에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최신 영농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 농업의 과학화·현대화를 선도하였습니다.

동오 이장표 회장은 ㈜조비와 ㈜경농을 운영하며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 확보를 강조하였습니다. 기업설립의 목적이 국가경제의 부흥에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해야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조비는 정부주도의 기업들이 아직 준공되기 전인 1955년 설립되어 국내외적으로 앞선 기술력과 제조설비를 인정받았습니다. 1957년 설립된 ㈜경농도 1958년 ‘농약제조업 및 수입업 허가 제1호’를 취득한 이래 1964년 국내최초 입제공장 준공, 1972년 국내최초 수도용제초제 원제합성 성공, 1973년 국내최초 제초제 원제공장 준공, 1976년 국내최초 국산 논제초제 개발 등 한국농산업의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 왔습니다.

농촌에서 출생하여 농업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동오 이장표 회장은 농업인이 잘사는 농업 강국을 꿈꾸었습니다. 농업인의 풍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비료와 농약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조비와 ㈜경농의 우수한 제품들은 건강한 농산물의 다수확을 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 향상과 농가소득 향상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국가 경제의 중장기 방향이 대외 수출로 전환하던 1968년에는 ㈜삼흥제사를 설립하여 국가 수출목표 달성과 농가소득 향상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삼흥제사가 국내 양잠 사업의 중흥을 선도하던 1970년대 양잠 산업의 수출액은 국가 총 수출액의 9%, 농산물 총 수출액의 52%를 담당하였습니다.

동오 이장표 회장은 이웃과 더불어 따뜻함을 함께 나누는 인본주의 경영을 추구하였습니다. 창업기인 1960년대부터 불우이웃돕기, 자연재해피해 지원, 방위성금 후원 등에 앞장섰으며 임직원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였습니다.
특히, 교육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경북 경주지역에 교육시설의 건립을 기증하기도 했으며, 학업 대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임직원들에게 인근지역의 야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장표 회장의 이러한 고귀한 인본주의 정신은 현재 조비경농장학재단, 동오농촌재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험난했던 시절을 겪으며 국가경제 부흥에서 그 해결책을 찾은 경영인 동오 이장표 회장. 이장표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농업 1세대의 발전을 주도하며 오늘날 한국농업의 기반을 탄탄히 만들어 왔습니다. 더불어 소외된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로 인본주의를 실천하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왔습니다.
‘동오(東塢)’라는 호가 의미하듯 한국농업과 농업인이 기댈 수 있는 동녘의 큰 언덕으로서, 조화와 상생의 가치를 추구했던 참 경영인이었던 동오 이장표 회장. 이장표 회장의 대의적 이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농산업을 있게 한 요체였습니다.